창세기강해 83강(25장1-18)”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죽음”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주고 175세에 죽고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고, 이삭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브엘 라해로이에 거하였고 이스마엘은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137세에 죽었습니다. 두 죽음은 동일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은 다릅니다. 성도의 죽음은 거룩한 무리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힘든 삶 가운데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가야할 본향이 있음을 깨닫고 힘들어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강해 84강(25장19-26)”선택 그 불편한 진실:에서가 기가막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쌍동이를 잉태하였을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고 해산 기한이 되어 에서를 먼저 낳은후 야곱을 낳았습니다. 세상에서의 번영, 의로운 행실 또는 가난함이 선택을 받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된 자를 주권적으로 선택하십니다. 구원은 자신의 행위로 된것이 아니므로 자랑할게 없고 겸손해 질수 밖에 없게 됩니다.
창세기강해 85강(25장27-34) “에서와 필리스티니즘(Philistinism)” 두 아이들이 장성하여 에서는 사냥꾼으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으로 장막에 거하였는데, 야곱은 사냥에서 돌아오는 에서에게 붉은 죽을 주며 장자권과 바꾸었습니다. 필리스티니즘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며, 자신의 일을 통해 인정받으려고 하고, 영적인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우선으로 여깁니다. 모든 사람들은 에서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중심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예수님께 의지하며 자신을 점검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강해 86강(26장1-11)”약속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흉년이 들고 이삭이 블레셋 그랄땅에 거주하였을때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리브가를 누이라고 했는데,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인 것을 보고 그 백성들에게 이삭과 그 아내를 범하지 말것을 명하였습니다.이삭의 삷과 같이 성도들은 두렵고 힘든 환경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실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녀됨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므로 늘 감사하며 신앙을 지켜가며 살아가야 하겠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게 된 것이므로 염치없지만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강해 87강(26장12-22)”하나님의 절대성” 이삭이 농사를 지어 재산이 많아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이 팠던 우물들을 막자 여러번 다른 곳으로 옮겼고, 르호봇까지 와서 우물을 팠을때 더 이상 다투지 않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막아 무너뜨릴려고 했으나 복의 근원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고, 그들이 의지했던 신이 허구라는것이 폭로되는 과정을 이삭의 삶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 어떤 것과도 비교 할수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을 이끄시고 역사하심을 알고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자족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강해 88강(26장23-33)”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이삭이 브엘세바로 갔을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복 주시며 자손이 번성할 것이라 하셨고, 이삭은 단을 쌓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과 함께 와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말하며, 서로 해하지 말자고 맹세한후 돌아갔습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가며 고난을 당했을지라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 사람들에게 역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89강(26장34-35)”거룩과 부정의 경계” 에서가 사십세에 가나안 헷족속 중에서 두명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노아가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공동체안에 들어올수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했었는데, 에서의 혼인사건은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함으로 거룩의 경계를 벗어나 저주의 길로 들어간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로 되풀이 됩니다. 그러나, 부정의 영역에 있던 가나안과 에서 후손의 딸 중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구원의 사건을 구약에서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어 어떤 부정한 것도 거룩한 영역으로 들어갈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음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자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포용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90강(27장1-19)”은혜의 불편한 진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오면 축복하겠다고 하자, 리브가는 둘째 야곱을 에서로 위장하게 하고 집에서 준비한 고기를 가지고 이삭에게 가도록 도왔습니다. 이삭의 눈이 볼수 없게 되어 아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게 된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후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율법에서 예수님의 믿음으로 바뀌게 되었고 누구든지 그 믿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게 되는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합법적이지 않게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여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도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의 의를 덧입으면 은혜를 받게 됩니다. 비겁한 야곱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91강(27장11-29)”구원은 그리스도로 위장하는 것이다” 리브가의 도움으로 야곱은 에서로 위장하고 고기와 포도주를 가지고 아버지 이삭에게 나아가서 에서로 인정받았고, 이삭은 그 음식을 먹고 마신후 야곱에게 축복을 하였습니다. 자격이 없는 야곱이 축복을 받는 과정은 성도가 하나님께 구원받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구원의 조건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기준에 절대로 부족한 상태임을 깨달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새 사람을 입어 자신을 위장해야 하며, 그 위장한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 왔든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만 바라 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창세기92강(27장26-40)”고난으로 위장된, 축복 능력으로 위장된 저주” 이삭이 야곱에게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을 받고 모든 사람을 지배할 것이라고 축복하였고, 뒤늦게 온 에서에게는 칼을 믿고 생활하며 아우를 섬길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연약한 야곱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며, 능력 많은 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며 언약이 지켜져가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 세상에서 어떤 형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93강(27장41-28장9)”축복의 나비효과”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일로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자 리브가는 야곱을 라반에게 피하도록 했고,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하며 밧단아람으로 가서 아내를 취할것을 명하였고,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야곱에게 위기가 찾아 왔고 의도하지 않던 다른 길을 갔지만 그것이 복을 허락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원치 않는 다른 길을 걸을때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묵상하며, 그 길이 십자가의 능력을 허락해 주시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발견하고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신앙생활입니다.
창세기94강(28장10-15)”하란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하나님”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밤에 돌하나를 취해 누워 자더니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사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이끌어 주시어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것이고 자손들이 그 땅을 얻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떠나 힘들고 지친 야곱은 돌로 제단을 쌓고 자신을 제물로 드렸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시어 인도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힘들게 삶을 살아가면서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부족한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갈때 회복이 되고 그것이 성도에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창세기95강(28장16-22)”하나님을 만난 자의 온전한 예배” 야곱이 잠에서 깨어 베개하였던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갈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자신이 서 있는 그곳이 곧 하나님의 집임을 인정하는 자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자입니다. 살아왔던 방법 그대로 살지만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 야곱이 걸어갔던 길입니다.
창세기96강(29장1-10)”목자 야곱” 야곱이 동방 땅에 이르러 양떼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고 있었던 무리들을 만나 라반에 대해 물었고, 라반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오는 것을 보고 우물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옮겨 양떼에게 물을 먹게 했습니다. 야곱이 동방, 즉 세상에 속한 땅에 도착한 후 이전의 모습과 다르게 목자없는 양떼를 먹이며 선택한 자를 구원하는 목자로서 행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통속에 있는 양떼들의 목자가 되고 선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그림자이며,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시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창세기97강(29장10-30)”신랑 야곱” 야곱이 우물입구의 돌을 옮겨 라헬과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인 후 라반의 집에 들어갔으며 작은 딸 라헬을 사랑하였고, 7년을 일하고 레아와 라헬과 혼인하였고 또 7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의 혼인은 성경적 혼인의 모형이며, 성경적 혼인은 깰 수 없는 약속을 기반으로 하며, 신랑은 신부를 위한 대가(희생)를 반드시 치르고 신부를 속량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희생을 통해 신부집에 속한 법도에서 신랑의 법도에 따르도록 신부를 속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선택하시고 율법안에서 죄의식과 두려움에 있을때 공의의 심판 아래에서 구원하셔서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옯겨 놓으신 사건이 성경의 혼인사건이며,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자유와 은혜를 누리며 이 세상에서 이웃을 너그럽게 받아줄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98강(29장31-35)”레아의 신앙”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르우벤이라 하며 이제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라 하였고, 둘째 아들을 낳아 하나님께서 내게 이도 주셨다 하며 시므온이라 하였고, 셋째 아들을 낳고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 하며 레위라 하였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낳아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며 유다라 하였습니다. 본문은 레아가 남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상태이지만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서 고통이 찬양으로 바뀌어 가며 신앙이 성숙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다가가며 현실의 고난, 걱정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99강(30장1-13)”육신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 라헬이 아들을 낳지 못해 레아를 투기하여 시녀 빌하를 야곱의 첩으로 삼아 아들 단과 납달리를 낳았고, 레아는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의 첩으로 삼게하여 갓과 아셀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비교하여 투기하는 상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경쟁적인 육적 신앙의 단계에 있고, 레아는 경쟁하지 않고 절대적인 성숙한 영적 신앙의 단계에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상대적으로 평가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성도 각자에게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어떤 삶을 살았든지 절대적인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예수님을 체험한 성도들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진정으로 축복해 주고 어려울때 도와주며 감싸주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복과 기쁨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창세기100강(30장14-21)”육신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2)” 레아는 르우벤이 들에서 얻은 합환채를 라헬에게 주고 야곱과 동침하여 다섯째 아들을 낳고 잇사갈(보상하다/구원)이라 하였고 다시 잉태하여 여섯째 아들 스불론(아내됨을 인정받다)을 낳았고 그 후에 딸을 낳고 디나(정당성)라 하였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은 자기문제를 해결하는데만 집중하며, 사랑도 거래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성숙한 신앙인은 온전한 사랑을 받아서 완전히 채워지고 넘쳐나 이웃으로 흘러가게 되며, 타인을 돌아보며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슬픔에 빠진 사람를 회복하도록 돕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창세기101강(30장22-24)”구원-치욕을 벗는것”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고, 라헬이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 수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대신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수치를 대신하시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모든 수치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것이 구원입니다. 주변의 힘든 상황이 변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평강,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의 삶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변하고 타인을 돌아보며 배려하며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02강(30장25-43)”구원의 역설:얼룩진 삶과 그리스도의 구원” 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은 라반과 품삯을 정하여 일하기로 하고 흠과 점이 있고 얼룩진 양과 염소를 받기로 했고, 양떼가 물을 먹으러 올때 푸른가지를 물구유에 세워 놓아 양들이 얼룩진 새끼를 많이 낳게 되어 야곱의 소유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구원의 역설은 흰 것이 있어야 검은 것이 부각되고, 얼룩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얼룩은 깨끗함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흠없는 율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얼룩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예수님께 나가게 되는 역설적인 과정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얼룩지고 하자가 많은 인생이지만 그것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더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03강(31장1-13) “돌아가라” 야곱이 재물이 많아지고 라반이 안색이 전과 같지 않게 되었을때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셨고, 야곱은 아내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자기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야 할것을 말했습니다. 돌아감이란 자기능력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힘들고 막힌 것들을 피해 돌이키며 어쩔수 없이 다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이 회개의 프로세스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 왔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생명, 약속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그 약속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04강(31장14-16)”내 집이 아니었구나” 라헬과 레아가 아버지 라반의 집으로부터 분깃이나 유업이 없음을 깨닫고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이르신대로 준행하라고 말했습니다. 라헬과 레아가 깨달은 본질은 자신들이 아버지에 의해 남편에게 팔렸고 아버지를 떠나 남편인 야곱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그동안 우리를 얽매고 있던 것,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체계들이 율법에 속한 것임을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기가 내집이 아님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로운 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입니다.
창세기105강(31장17-18)”밧단아람을 떠나다”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약대에 태우고 밧단아람에서 얻은 짐승들,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관습,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안식, 자유, 평강이 있는 하나님 나라로 향해 걸어가는 것이 구속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어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06강(31장19~35)”드라빔이 뭐길래”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떠나 길르앗산에 이르렀고, 라반이 야곱을 쫓아 갔을때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시어 야곱을 선악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고, 라반이 야곱 일행를 만나 자신의 드라빔을 찾았지만 라헬이 숨기고 있어서 찾지 못하였습니다. 드라빔은 가족, 종족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우상이고 단순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지만 소유권을 확정하는 증거물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정죄받지 않기 위해 율법대로 살려고 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이 자기의 드라빔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율법 아래에서 자신이 행사하려는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의를 이루려는 자기의 노력을 내려 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07강(31장36~42)”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라반이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야곱이 노하여 지난 20년동안 자신이 수고했던 일을 말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과정에는 자신의 죄들을 깨닫는 단계, 그런 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단계,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 대한 절망의 단계,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야곱에게 허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지 않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허물이 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한 성도이기에 허물을 찾지 않으신다는 구원의 본질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08강(31장43~55)”상호 불가침 언약” 라반이 돌을 취하여 기둥을 세워 증거로 삼아 딸들과 자식들을 야곱이 책임질 것이며 서로의 영역을 넘어가지 않기로 맹세했고 딸들과 손자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구원은 옛주인 율법에서 새주인 그리스도로 권한과 책임이 이전되는 것이고, 옛주인과 새주인 사이의 불가침 조약인 것입니다. 구원 받은자는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끝까지 돌보시고, 이전의 율법으로 지배받지 않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자유와 사랑과 의를 누릴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09강(32장1~12)”마하나임과 두 떼” 야곱이 길을 가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고, 형 에서가 야곱을 만나려고 오자 두려워하여 소유물을 두 떼로 나누고 하나님께 에서의 손에서 건져 주실것을 간구했습니다. 야곱의 일생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닮았고 두 떼, 두 나라로 나누어지는 역사도 같은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룰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구원입니다. 자격없고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마음의 담을 허물고 타인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강해 110강(32장3~12)”먼저 화목하라” 야곱이 사람들을 형 에서에게 보내 만날 것을 알렸고 에서가 군사들을 이끌고 오자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에서의 손에서 건져 주실것을 간구했습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가면서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구원받은 자는 이웃과 화목하고 자신의 실수도 용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므로 우리 내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화목된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안에서 진정으로 이웃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강해 111강(32장13~24)”어두운 밤에 찾아 오시는 하나님” 야곱이 자기 소유물중에서 예물로 취하여 여러 떼로 나누어 에서에게로 보내 형의 감정이 풀린 후에 대면하려고 했고, 그날 밤 얍복 나루에 홀로 남은 야곱은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진리를 깨닫고 어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 홀로 남는 외로움, 죽을 힘을 다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함이 있으므로,밤이 고난이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약속을 받고 어둠에서 벗어나 진정한 빛을 발견하게 되는 축복이 됩니다
창세기강해 112강(32장24~29)”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야곱이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 불리워질 것이라고 하며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의지하던 삶에서 벗어나고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굴복당하여 하나님의 통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자신의 소유와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던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의지하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엎드리며 은혜안에 거하는 이스라엘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13강(32장29~33장11)”나에게 에서는 누구인가?”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곳을 브니엘이라 하였고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를 만나 일곱번 절하고 아내들과 자식들도 나아와 절하고 준비한 예물을 에서에게 전하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 화해하며 용서받는 과정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것 같이 에서의 얼굴을 보았고, 에서의 용서와 희생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준 사람들임을 깨닫고 그 얼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점점 가까이 가는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두려울때 여러 얼굴로 나타나시어 위로하시고 경책하시고 기쁨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114강(33장12~17)”세일로 간 에서, 숙곳에 집을 지은 야곱” 에서가 야곱에게 길 안내를 하려고 하였으나 야곱의 요청으로 형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집과 짐승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세일은 털,숫염소이며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진 염소가 광야로 가는 것을 비유하며 숙곳은 구원의 여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형 에서가 구원에서 탈락하여 희생하게 되고 대신 동생 야곱이 쉼을 얻게 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허물을 지시고 희생하심으로 자격없는 죄인이 구원을 받고 쉼을 얻은 것이므로, 그 엄청난 희생의 가치를 무겁게 인식하며 나의 사건으로 묵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창세기115강 (34장1~2)”야곱, 가나안의 길로 가다” 야곱이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장막을 치고 땅을 사고 그 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습니다. 야곱은 세겜을 평화의 성으로 착각했고 그 땅을 구매함으로 그곳에 정착하려고 했고, 가나안 족속이 신을 부르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불렀는데 야곱은 가나안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딸 디나의 사건을 통해 야곱이 가나안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동화되어 물질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수 있는데,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빨리 깨우치고 그 길에서 벗어나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16강(34장1~2)”판을 엎으시는 하나님” 레아가 낳은 딸 디나가 가나안땅으로 나갔다가 히위족속 추장 세겜이 디나를 강간하여 욕되게 했습니다. 디나가 부도덕한 일을 당하고 후에 야곱의 아들들에 의해 학살이 일어나고 야곱가족이 그 땅을 떠나게 되는데, 디나의 희생을 통해 야곱이 가나안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영적인 크리스찬이 세상과 동화되어 살때 스스로 빠져 나올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즉 악한 것을 통해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이고 야곱의 삶속에서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 내힘으로 감당할수 없는 고통, 위기가 있을때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벧엘로 인도하시기 위한 섭리임을 생각해보는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17강(34장3~19)”야곱의 침묵” 세겜이 디나를 사랑하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에게 통혼하자고 했으나 야곱의 아들들이 듣고 노하여 세겜과 하몰을 속여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허락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일을 벌일때 야곱이 침묵한 이유는 세겜족속이 진정성이 있었고 현실과 타협하면 가족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야곱은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바울이 침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로마 전체가 복음을 듣고 많은 교회가 생겼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보고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보고 타협하며 침묵하면 복음을 알지 못하는 그들로 하여금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를 만난 성도로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복음을 담대히 전할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18강(34장20~31)”샴 쌍둥이:영과 육” 세겜과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할 때에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칼로 그들을 죽이고 디나를 데려 오고 모든 재물을 빼앗았는데 야곱은 아들들을 나무라며 그 일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히위족속이 심판당하고 야곱은 경제적 손실과 도망자 신세가 되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살게하기 위해 세겜을 야곱으로부터 분리하신 사건입니다. 살아가면서 받는 고통은 내 안에 있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분리하는 하나님의 사역이기에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일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들인이 세상에 동화되어 있다면 세상의 육신적인 것들을 박탈당하게 되고, 중요한 것들을 잃는 고통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 주신 기쁨과 안식과 평강을 누릴수 있게 되는 것이 구원이고 복음입니다.
창세기 119강(35장1절)”하나님께서 이끄는 삶”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삶에 개입하시는 시간이 된 것이고 하나님의 4가지 명령은 일어나라, 올라가라, 머물라, 단을 만들라 입니다. 일어나라의 의미는 세상에서 지치고 더 이상 살수 없는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모습이며, 지금까지의 터전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통속에 있을때 벧엘, 즉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벧엘에 머문다는 것은 자신의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지금은 마음속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나라 안으로 옯겨지고 그 가운데 머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복음의 길을 걸으며 벧엘에 거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20강(35장2~5절)”세겜을 떠나며” 야곱이 자기집 모든 사람에게 이방신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을 것이라 말하였고 모든 이방신상과 귀고리를 세겜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벧엘로 떠났고 모든 고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야곱 일행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세겜의 우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착한행실로 자기를 빛내고 하나님께 상급받으려고 하는 생각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성도가 정결케 되고 의롭게 된것이 옷을 갈아 입는다는 의미이고, 세겜을 떠난다는 것은 자기노력으로 의를 쌓아갈 필요가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만 살아가게 된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우상이 무엇인지 깨닫고 우상을 쫒는 삶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로 옷입고 주님안에서 평강과 자유의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21강(35장6~9절)”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다” 야곱과 모든 사람이 벧엘에 이르러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고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고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했습니다. 야곱이 벧엘, 하나님의 집에 이르렀는데 아직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있고 자기가 의지하던 것들이 사라져가는 상실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세상의 지배원리 아래에서 살며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데, 고통을 통해서 나의 욕망과 죄성이 드러나고 가진 것들을 박탈당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좀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현실을 잊게 만드는게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이며, 힘들지만 믿음으로 인내할때 기쁨을 누리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될수 있습니다.
창세기 122강(35장9-15절)”교회로 성취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에서 후손들이 번성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전제물과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본문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신약의 그림자이며,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이행하는것이 아니며,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교회를 이루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과정은 죄인이 성도로 불리워지고, 교회로 성취되며, 성도들에게 새하늘과 새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안에 속하게 된 것이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성도로서 세상에서 힘든일을 만나고 실수할지라도 하나님안에서 받은 은혜가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경험하며 새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23강(35장16-20절)”왕들의 뿌리–에브랏(베들레헴)” 야곱 일행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 라헬이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게 되어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습니다. 에브랏은 야곱이 거처간 지역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며 이스라엘 역사에 영향을 주었는데 이스라엘의 왕들이 나온 베냐민/에브라임/유다 지파의 뿌리가 되는 지역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브랏)에서 직접 왕을 세우셨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노력으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것이 죄이며 그것이 잿더미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털어낼때 십자가가 보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 안으로 피신하는 것이 구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쉼과 평강을 누릴수 있습니다.
창세기 124강(35장16-21절)”어린양 그리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야곱 일행이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 라헬이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어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은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습니다. 에델 망대는 양을 지키는 목자가 있는 곳이고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장소이며,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으로 본문을 보면 슬픔의 아들(베노니), 오른손의 아들(베냐민)은 희생양이시고 왕이신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고, 진짜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희생을 당하시고 부활하셨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대속받고 예수님의 통치안으로 들어가 세상의 것과 옛 습관을 버리는 훈련과정이 신앙생활입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애통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 속할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느껴질수 있습니다.
창세기125강(35장22-29절)”장자의 희생 그리고 구원”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낳은 열둘아들중 장자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 빌하와 통간했음을 들었고, 아버지 이삭을 만나러 기럇아르바(헤브론)로 갔고 이삭이 죽으매 에서와 함께 장사하였습니다. 르우벤의 행동은 아버지의 권위를 침범한 것이고 후에 장자권을 박탈당하게 되고 장자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상징적인 사건이며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장자는 자기 열심으로 자신과 가족을 책임지려는 자이며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격없는 땅의 장자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늘 기억하며 받은 사랑를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 126강(36장1-43절)”에서의 후손들” 가나안땅에서 야곱과 에서의 소유가 많아 함께 거주할수 없게 되자 에서는 모든 짐승과 재물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갔고 그 후손들이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후손들보다 훨씬 빨리 세상에서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후손들을 훼방하는 자가 됩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정죄하며 훈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 내면에 율법으로 자신을 정죄하며 과거의 일로 죄책감을 심어주는 에서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뜻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 정죄함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안에 머물때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뀌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그분이 우리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