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1강 “제대로 알고 기도하자” 성경에서 기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히브리어를 찾아보면 아이테오, 프로세우코마이, 파라칼레오, 제테오가 있습니다. 아이테오는 약속된 것을 간구하는 것이며, 프로세우코마이는 기도하며 예배드리며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며, 파라칼레오는 원하는 것을 달라는 것으로 듣는 상대방의 반응여부와 상관없이 주장하는 것이고, 제테오는 무언가를 찾을려고 노력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설명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프로세우코마이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담긴 의미와 사상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기도와 올바른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하시며 기도의 본질과 왜 기도해야 하는지와 누가 기도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주기도에 나오는 여섯가지 간구는 하나님 이름이 거룩히 됨, 하나님 나라가 임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우리의 일용할 양식, 우리의 빚을 탕감, 악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성취하는 것과 성도를 위해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의 의미를 보면 성도의 내면에 세상의 욕망인 우상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거룩하지 못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제거하게 하시고 성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되는 고통의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기도할수 있는 방법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정말 거룩하게 부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기도문강해- 2강 “하나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짐”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될수 있고, 인간들 관계에서만 성립하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진짜 기도가 될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는 약속된 하나님의 뜻과 의를 구하라는 것이고 구원에 대한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요구사항을 붙여서 사용하는데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고 구원받는 순간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내 안에 있는 세상의 욕망을 버리는 고통의 과정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거나 가난과 부족함으로 고통받는 것이 흑암의 권세아래에 있어서 사탄의 방해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심의 과정을 반드시 거친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성도의 삶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훈련을 받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인정한다는 것은 현실의 삶을 그대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들 자신들이 정한 길이 이루어졌을때 그 결과를 놓고 하나님의 뜻을 끌여들이지 않는지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하늘의 것이 그대로 이 땅 위에서 그대로 된 것을 알레데리아(진리)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담이후 인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이 없었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후 다시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강해-3강 “일용할 양식과 우리의 죄”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되어 있는데, “일용할” 이라는 표현은 4세기에 신학자들에 의해 들어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먹는 문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에 관한 문제를 말씀하신 것이므로 정확하게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해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육신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고, 영원한 떡이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기를 간구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용서를 하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빚진 모든 빚을 탕감해 주라는 것이라고 볼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개념을 공동체로 확장하시어 이웃과의 관계에서 배상할 능력이 없어 괴로워하는 빚진 자에게 빚 탕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인간 공동체내의 관계는 빚을, 하나님과의 관계는 죄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아직 청산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부채를 가진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용서만 구하는 사람은 공동체에 부적합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용서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이웃을 돌보고 사랑을 베푸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