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1강(1장1~11) 헛된 것 안에서 참된 것을 발견한다 본몬은 솔로몬왕이 말년에 인생을 돌아보며 쓴 내용인데, 이를 통해 헛된 것들 가운데 새로운 세상을 맞이 하려는 소망, 빛이 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 그 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알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이 보잘 것 없었음을 알때 그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며 절대적이지 않고 앞으로 오는 미래가 현재의 것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의 전통과 형식이 없는 세대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익숙한 현실은 편한함을 가져다 주지만 그 익숙한 것이 진리가 아니고 진리를 발견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진정한 예배는 형식에 담겨질 수 없고 성도의 삶이 예배이고 예배는 변함이 없습니다. 현재 어둠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진리를 발견하고 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며, 기독교의 기본 가치는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행실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 견고한 믿음이 됩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자신의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나게 되지만 헛된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소망이 절망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고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나누어지게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인 이중계명,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기억하면서 예배가운데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돌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섬기고 위로하고 기도하며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2강(1장13~2장26) “과거의 Normal은 잊어라” 솔로몬왕은 특별한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같은 일상이 유지된다면 특별한 것도 Normal이 되지만 일상이 틀어진 상태에서는 특출난 능력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풍요하게 살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권력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방인 아내를 취했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성도는 지금 누리고 있는 익숙한 것들을 Noraml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우상이 아닐까 돌이켜 봐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새로운 상황에 이르자 자신의 삶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전도서를 기록한 후 죽음을 맞이 하였고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고난의 시기를 지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 이전의 Normal은 소용없게 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지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전도서3강(3장1~26) 기한과 때 솔로몬은 말년에 하나님의 개입으로 큰 고비를 만났을때 인생을 돌아보며 전도서를 기록했습니다. 본문 말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에서 기한(크로로스)은 때와 때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며, 때(카이로스)는 인생에 있어서 만나는 특별한 시점을 의미하며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흔적이 남게 됩니다. 현대사와 한국역사에서 체제가 급변하는 사건이 많았는데, 코비드19 팬데믹도 역사적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역사적 전화점의 시작과 끝이 카이로스이고 중간이 크로로스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후계자로 삼지 못했고,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은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고비가 있었습니다. 때와 때 사이를 살아갈때 자기 능력으로 살면서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거나 위기의 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카이로스같은 사건을 겪을때 인간의 계획은 소용이 없고 그것이 지나갔을때 지금과는 다른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고비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 알수 있는데 솔로몬은 위기를 만났을때 선을 행하지 못했던 것과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지 못했던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죽고 흙으로 돌아가나 짐승의 혼은 흙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혼은 하늘로 돌아가는데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간다면 그 인생은 비극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다면 인생을 살 의미가 없다는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외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기독교의 복음을 깨닫고 전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의 때를 지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4강(4장1~16)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본문은 홀로 살아가는 슬픈 모습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채우려는 죄인이며 타인을 돌아보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역사적인 환란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 본심이 드러나게 되고 타인이 고통을 당하더라도 자신만의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것이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사랑이 없이 홀로 살아가는 모습인데, 그리스도인들은 욕망대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며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고 손을 내밀때 본인의 행복이 찾아오며 아픔이 사라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경험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에서도 한기를 느끼며 살게 되는데,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들은 넘어졌을때 자기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게 되는데, 타인을 원망한다면 고난의 시간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이 함께 길을 갈때 누군가 넘어졌을때 서로 일으켜 세워 주고 캄캄할때 옆에 있어 주는 동료가 되어주면 사랑의 공동체가 될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할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성도를 도우시는데, 성령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욺직여 함께 하며 돕게 하십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온기를 전해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사랑이며,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되어 사랑할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사랑하며 살아갈수 있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날때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사랑을 베풀며 그리스도인 됨을 나타내며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세상을 덮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5강(5장8-20) 공수래 공수거 인생 공수래 공수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족할 줄 알고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평정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유한한 삶 이후에 다른 세상이 오고 진정한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아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었을때 땅의 소산은 하나님이 주신 자원이었지만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이후에 땅이 저주 받아 땅의 소산은 유한한 상태가 되었고 인간스스로 만들어낸 자원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떠난 탕자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잔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돈과 생명을 추구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이웃을 돌아보고 영원한 가치, 진리를 발견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인간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원하는 존재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궁극적인 선을 받을수 없습니다. 많은 재물을 축적했어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깨달을때 겸손해 질수 있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최선을 다하되 자신의 성공과 실패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가 풍요의 원천인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건에 따라 최선을 다하며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6강(6장1-12) 진정한 행복의 근원 본문은 인생에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행복을 누릴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며 외적인 조건, 건강, 위로의 말들이 행복을 가져다 줄수 없습니다. 마음에 진정한 기쁨이 있을때 행복해지지만 각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행복의 조건을 절대로 성취할수 없고 현실과 목표가 다르면 불행해집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복을 누릴수 없으며 주어진 현실의 삶에 만족하며 오늘이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적 위로의 말은 헛된 것이고 그림자에 불과한데 교회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으려 하고 심리학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원한다면 돈,명예, 권력등 세상적 행복을 찾지 말고 어떠한 현실이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로부터오는 궁극적인 생명과 행복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7강(7장1-29)난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지혜 솔로몬은 땅의 기름진 것들을 추구하고 살았다가 고난을 만났을때 세상의 것들이 허망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잊고 살아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에서 잔칫집이나 초상집으로 가는 길 중에서 어떤 길 위에 있는지가 중요한데, 성도가 가야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난세를 만났을때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상을 추구하고 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각각 고난을 당하는데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은혜의 과정입니다.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즐거워하고 곤고한 날에는 뒤돌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들이 엉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질서롭고 선한 것이고 그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통받는 난세가 축복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메세지를 알아야하며 어떤 길을 향해야 하는지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타인을 선악간에 판단하지 말고 내가 악한 존재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타인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악함과 욕망이며 인간의 본질 속에는 악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만날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시는 것에 자족하고 타인에게 사랑을 베푸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8강(8장11-17)선하신 하나님과 악으로 가득한 세상 본문에서 인간들이 선을 행하여도 악한 결과를 낳는다고 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선한 것임으로 오늘의 제목은 맞지 않는 명제입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이 인간세상을 통치하지 않고 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한 것을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의 근원은 악이지만 결국 선으로 바뀌게 됩니다. 인간들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선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를 선하게 빚어 가시며 모든 악을 예수님께서 지셨으므로 인간의 행위로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복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복 될 것이라고 했는데,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만났을때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는 반드시 두려운 하나님을 만난 후에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이르는 의로운 존재도 있고 선한 일에 이르는 악한 존재도 있다고 했는데, 십자가 사건은 인간들이 당시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을 처형한 사건이며, 하나님이 악한 인간의 손을 통해 공의와 구원을 이룬 사건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이끄십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고난들의 본질을 깨달을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구원할 자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간들이 생각하는 악이 하나님의 선 일수 있습니다. 원하던 원치않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 안에 있다고 믿고 맡기면 진정한 신앙인이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시며 통치하고 계심을 깨닫고 힘들때 서로 위로하며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9강(9장10-12)비르투와 포르투나 본문에서 솔로몬은 “현재 주어진 삶의 조건하에서 최선을 다하라” 라고 했는데, 각자 모습대로 노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들에게 각자 정해진 시기와 기회가 있고 노력에 대한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르투는 인간의 미덕으로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포르투나는 숙명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노력과 재능 때문이 아니라 경제환경이 조성되어 성공을 이룬 것이므로 포르투나라고 할수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에 “인생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없다” 라고 했는데, 모든 인간들은 자기 능력으로 목표를 이루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에 넘어지고 고통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비르투와 포르투나 사이에 있는 죽기를 무서워하며 한 평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성도가 힘든 세상을 살아가며 견딜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미 해방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하고 힘든 상황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10강(10장5-1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우매함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는데, 모든 인간은 탐심을 가지고 살아갈수 밖에 없는 우매한 존재임을 설명하는 것이고 현재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솔로몬왕은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으로 행한 것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우매한 것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로마철학서 명상록에는 신을 의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이라고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악이며 우매한 자의 헛된 말입니다.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는데 은혜는 자기 짐을 내려 놓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아는 상태이며 은혜의 반대는 자기 스스로 선을 이루려는 노력입니다. 본문에서 우매한 자는 노력하지만 지치게 되고 하나님의 도성을 향해 가지만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성도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바리새인보다 의롭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라고 하셨는데, 율법과 윤리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 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으면 의롭게 여겨지고 구원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지혜롭고 해낼 능력이 있다는 인간 중심적인 헛된 힘, 말, 수고를 버리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통해 십자가의 의를 발견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착한 행실로 의를 만들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벼운 우매자의 삶이 아니라 묵직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11강(11장1-2) 우리는 무엇에 집착하고 살아가는가 본문에서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에 대해서 돈을 잘 투자해서 이익을 취하고 가진 재물을 나누어 주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빵을 물위에 던지면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되지만 영원한 생명을 찾게 될것이라는 설명이 좀 더 맞는것 같습니다. 빵 같은 육신의 문제를 새로운 생명인 영적인 문제로 바꾸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빵은 세상의 모든 조건들이고 물은 바닷물이 아니고 성경적인 의미로 새로운 생명체을 만들어내는 근원인 것입니다. 빵을 물에 던지라는 것은 썩을 양식을 생명의 근원인 영적인 물에 던져 넣어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인생 전체를 빵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은 가진 것이 있어도 자신에게 없는 것으로 고통받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빵에 집착하는 삶은 약자를 무시하거나 부당함을 받아 생긴 분노를 옆사람에게 표출하는 수직, 수평적 폭력이 일어나는 세속적 삶입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의 삶에서 고통이나 결핍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나 빵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몰입하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희락과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세상적 빵을 버리고 작은 일에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빵의 틀, 세속의 틀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12강(11장9-12장7) 그리스도인을 향한 일곱가지 명령 본문을 요약해 보면 청년들에게 악을 멀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올바르게 살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성경에서의 청년의 시기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복음이 무엇인지 알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일곱가지 명령은 개인, 사회/공동체, 하나님 나라 차원으로 나눌수 있는데 모든 명령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인 차원의 명령은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청년의 날을 기뻐하며 근심을 떠나게 하고 악을 물러나게 하라는 것이고, 사회/공동체 차원의 명령은 마음에 원하는 길로 행하라고 했는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차원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줄 알고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종교적 도덕적 기준으로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과의 성도의 관계가 온전한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판단한 세리와 의롭다고 판단한 바리새인 둘다 자기 스스로 의로운지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가 이므로 온전히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은 창조의 목적과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피조물의 세상에 동화되어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 하나님 나라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안에 들어갈때 선을 베푸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기쁨과 희락이 됩니다. 통치자이시고 심판자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사회와 개인을 돌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 험난 할 지라도 그 길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서13강(12장11-14)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 본문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의 말씀이 택하신 백성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철을 지키도록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지 설명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며, 소망없이 자기 스스로 삶을 지배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본질을 깨닫도록 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게 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 십자가에 이르게 이르게 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합니다. 진노의 자녀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교회에 다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종교적, 도덕적규범을 추구하는 정욕에 사로잡혀있는 타락의 상태이고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으로 죄를 알게 하고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고 새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죄는 자신이 만들어낸 의로 인해 깊숙히 감추어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우리의 죄 성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철들을 지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그 안에 머물며 과거의 죄에서 벗어난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