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행전 1 (예수님의 탄생, 세례요한)

  • 주일설교 누가-행전1 “알고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눅1: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가 로마귀족 데오빌라에게 보낸 편지로 예수님의 공생애와 복음이 무엇이고 어떻게 확산되어 갔는지 설명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우리의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다 라는 것이었고 데오빌라도 전해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본문은 데오빌로에게 복음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알려주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적 세계관을 가진 이방인들은 복음을 들었지만 죄, 결핍, 하나님나라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했습니다. 현재도 교회에서 복음을 들었지만 자신이 강도 만난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려고 하거나 세상적 욕망을 누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설명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이 가난하고, 얽매이고, 눈먼자이고, 포로된자 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서 복음의 은혜를 올바로 깨닫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 “앙시앵 레짐” (눅1:5-25)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하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앙시앵 레짐이란 구 체제/암울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헤롯왕이 통치하는 억압상태에서 종교생활을 하며 열매없고 소망없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려고 하는 아담적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 체제인 세상의 틀이 무너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도래한 것이며, 나 뿐 아니라 타인을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평안한 삶을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통치안으로 들어가 자유와 안식과 평강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_행전3 “백성들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눅1:5-25) 본문은 구 시대와 신 시대가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 스가랴와 이스라엘은  절망가운데 있었고 절망의 터널 마지막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동안 자신의 죄 용서와 나라를 회복시켜 달라고 반복적으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 나갈수 없는 존재이고 본질적인 죄인이므로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하지만 지은 죄만을 나열하며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현재의 기독교인과 같습니다. 사가랴가 기도하는 도중에 천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백성들의 기도에 대해 응답으로 아들을 낳게 될것이고 요한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자비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복음을 들었지만 말을 못하게 되어 전하지 못하였고 후에 아들 요한이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 안식,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자비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그리스도의 통치안에 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_행전4 “우리의 수치를 씻으신 하나님”(눅1:11-25) 제사장 스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가 성령충만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것이라고 말하였고, 엘리사벳이 잉태한 후 숨어지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으셨음을 고백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였고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였는데 구약의 모든 예언이 요한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의 역할은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므로 요한은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신실하신 믿음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없고 부끄러운 삶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며, 율법으로는 의로워질수 없고 예수님을 만날때 수치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란 잘해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안되지만 상을 받는 것이고 성도의 상은 예수그리스도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상태를 자신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온전함을 깨닫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부족함과 율법같이 얽매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께 인도됨을 감사하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수치를 씻고 기뻐하며 자유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_행전5 “비통의 아이콘 마리아”(눅1:26-30)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가 지극히 놓으신 이의 아들로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사건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선하고 의로운 사건이었으나 마리아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스가랴에게 나타난 요한의 수태고지와 비교해 보면 마리아에게 나타난 사건은 소외된 장소, 낮은 지위, 아들을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받아들이기 힘든 큰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의미는 고통, 비통, 슬픔, 괴로움입니다. 천사가 평안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마리아가 듣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선택하신 사람은 은혜를 받은 것이지만, 그 사람의 삶은 윤택하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욥기는 이스라엘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욥은 고난을 당한 것을 불의하다고 했으나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두 선한 것이며 하나님의 선은 사람이 생각하는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구원하는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의 예표이며 강도를 만나거나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 불편한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음을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고통을 선으로 받아들이고 은혜를 깨닫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_행전6 “나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눅1:31-33)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가 지극히 놓으신 이의 아들로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택하신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인간들의 도덕적인 행위의 죄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과 단절된 근본적인 죄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황제를 신격화하여 지극히 높은 자라고 했었는데 그것이 가짜이고 진짜인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이 오시어 그의 나라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인데 구원은 예수님을 주로 섬기고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죄 용서받고 예수님을 주로 섬기고 세상의 허상을 섬기지 않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를 예수그리스도께 내어 드리고 예수님를 섬기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_행전7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삶을 증거하다”(눅1:39-45)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갔을떄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이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요한이 만나는 과정이며,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스가랴와 엘리사벳과 태중의 요한은 구약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찾아가신 것처럼 예수님은 죄인에게 찾아오십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을 능력이 없고 예수님이 오시면 욕망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태중의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자 구원의 날이 오게 되는 것을 기뻐하여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충만하여 마리아에게 내 주의 어머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주의 뜻이 성취될 것을 믿는 복된 자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선택받은 교회가 복을 받는 것인데 세속적인 물질의 복이 아니고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이 성도의 복입니다. 각자의 삶에서 하자가 있어서 힘들떄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죽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현재의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과정임을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8″마그니피카드(마리아의 찬송)”(눅1:46-56)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두렵고 떨리는 고통의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했습니다. 극심한 고통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았을때 평안하다고 고백하게 되는데, 마리아도 고통가운데 있었지만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신앙의 과정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다가 어두운 터널속에서 하나님이 삶에 개입하셔서 빛을 발견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 가운데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추락을 경험하게 된 후 하나님을 바라보고 어둠을 통과하고 구원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 신앙의 과정입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로 묵묵히 따라가는 것이며,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현실이 신앙의 과정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받은 사랑을 타인에게 나누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며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9 “구원에 대하여”(눅1:46-56) 본문에서 마리아는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구원이란 마음의 생각과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한 사람이었지만 구원을 받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타인을 짖누르는 사람이 권세있는 자인데 세상 모든 사람이 해당되며,  권세는 모든 것을 차별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힘을 사용하거나 당하는 사람들 모두 내면의 욕망으로 비참한 상태를 느끼는 죄인인 것입니다. 구원은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고 부자를 빈손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오지 마을에 문명이 들어가자 행복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여 가난하다고 느끼고 세상의 부의 욕망을 추구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구원받은자는 현실이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게 되어 물질의 소유가 행복을 가져다 주기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 삶에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진리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0 “제사장 사가랴에서 세례 요한으로” (눅1장57-66)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사가랴가 이름을 요한이라 하였고 혀가 풀리고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이 해산할때 친족들은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라고 하기를 원했던 것은 기존의 질서안에서 반응을 했던것이고 구약적 세계관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사가랴는 찬양을 했고 요한이 태어난 상황을 것을 본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온 유다 사람들은 미래의 일을 걱정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은 자신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심판하는 것이며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다가 왔을때 대분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하기만 하고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만 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독교 세계관으로는 자신의 죄 용서받는 것에 그치고, 자신의 삻을 누가 통치하고 인생에서 어떻게 고통이 해결되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질서를 믿고 살아가는 체제에서 벗어나서 가고 있던 길에서 돌이켜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복음의 진리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현실을 하나님의 뜻안에서 받아들이고 현실이 바뀌지 않지만 그가운데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예수님이 전부인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누가-행전11 백성을 돌보시고 속량하시는 하나님 (눅1장67-80) 본문은 사가랴가 백성을 돌보시고 속량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언약을 지키셨고 백성을 구원하신것과  주를 섬기게 될것이라고 찬양했고, 아이가 장차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서 그길을 예비하게 될것이라고 했는데 누가복음 전체를 축약한 것과 같습니다.  자신과 타인의 죄를 정죄하고 의를 행했는지 판단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므로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얽매고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것이고 속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늘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며, 고난을 통해 눈물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꽃이 지면 초라해지지만 새로운 씨가 만들어지는 과정인 것처럼 율법으로 살아온 이스라엘백성이 사라져야 하나님의 말씀이 세워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은 육신에 있을때 자신을 얽매였던 것이 죽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타인과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세상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것처럼 살아갈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의로 살아가는 죽은자이므로 하나님께 판단기준을 맡겼을때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될수 있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를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께 인도하시고 고난가운데 눈물속에서 걷게 하심을 감사하며 화려함이 아닌 온전한 씨로 살아가며 나의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로 더불어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2 세례 요한이 왜 필요한가 (눅1장67-80) 본문은 사가랴의 찬양으로 세례요한이 주 앞에서 그 길을 준비하고 구원에 대해 알리고 어둠에 속한 사람들에게 빛이 비춰치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장차 세례요한이 해야할 일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와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율법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고 백성들에게 행위의 죄를 용서 받는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죄에 대하여 구원을 받아아야 하는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둠에 속한 자들에게 빛에 대해서 증거하고 성도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에 속한 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도덕적 행위가 아니고 모두가 어둠에 속한 자인데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세례요한의 역할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다가 한계에 이를때 어둠에 속해 있고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알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게 됩니다. 온전한 신앙에 이르면 세례요한은 사라지고 평강의 길로 인도되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삶에서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향하고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음 속의 돌을 제거되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3 “Two Lords, Jesus and Augustus”(눅2장1-7)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모든 사람에게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요셉은 마리아가 함께 고향 땅 유대 베들레헴으로 갔고 마리아의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구유에 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강하고 번성했던 아우구스투스 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기독교인들이 픽박을 받았으며 로마가 쇠퇴한 후에 기독교가 번성했습니다. 신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하나님의 참 아들인 예수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로마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충돌하게 되었고 예수님은 두개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마리아가 해산할 때에 호적하러 가야만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알고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내어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왜 이런 일이 있는지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주권자 예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4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눅2장6-20) 마리아가 아들을 낳아 구유에 뉘었고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에게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천사의 말을 전하며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 목자들은 에델망대에서 희생제사에 드리기 위한 양을 지키고 있었는데, 천사가 나타나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진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나게 됩니다.  희생제사에 드려질 양을 돌보는 목자들에게 진짜 어린 양이 오신 것이고, 더 이상 양을 희생제사로 드리지 않아도 되는 복음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고 그림자가 아니라 본질을 찾게 된 것입니다. 구약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희생제사가 필요없어 졌는데도 계속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을 돌보는 상태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진짜 양이자 목자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이 해결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고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찬양하며 감사하며 받은 증거를 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며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진정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5 “형식이냐 본질이냐”(눅2장21-24) 요셉은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였고 할례할 날이 되어 아기를 데리고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모세의 법,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고 후에 십자가에 실제로 희생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율법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고 어떤 형식이든지 중요하지 않으며, 구원의 본질을 발견하면 평안,쉼,평강이 있음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성취하셨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없이 율법의 형식만 따르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보이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형식은 본질을 깨닫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즉 진정한 신앙은 죄를 지었음을 알고도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한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을 알수 있으므로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율법의 본질인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채워져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형식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며 베풀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6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눅2장25-26)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성령님이 함께 하셨고 그리스도를 보게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정결의식을 드리는 날에 성령님이 시므온을 성전으로 인도하셨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40일동안 지내며 시험을 통과하셨고, 사도바울은 아시아 지역에서 전도를 하려고 했으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선한 일을 계획할 지라도 하나님 뜻에 따라 길이 막히고 다른 길로 가게 된것을 알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전도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이 회개하지 못했던 존재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는 구원을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이끌기 위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시어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안에 머물도록 인도하십니다. 매일의 삶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안에 머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7 “빛 가운데에서 누리는 해방”(눅2장27-33)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는 요셉과 마리아를 만났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주의 구원을 보았고 세상을 비추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빛임을 깨닫고 자신을 얽매이고 있던 율법에서 해방되는 구원을 찬양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빛이 들어 왔지만 행위로 의를 쌓으려는 것은 빛을 가둬두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님의 두가지 의가 보여졌는데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고, 율법외에 다른 하나님의 의는 사랑,은혜 즉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고 회심한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빛을 받았지만 사랑을 가두고 위로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수동적인 크리스찬이 되지 말고 타인을 만나 안아주고 용서해 주며 빛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8 “거짓이 진실을 만났을 때”(눅2장34-35)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후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오시어 행하실 일과 결과가 백성들에게 어떻게 미칠것인지 예언했습니다. 안전하다고 했던 체르노빌원전이 폭발하자 거짓을 은폐한 댓가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거짓을 폭로한 진리를 죽여서 거짓을 진리라고 주장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선 자를 넘어지게 하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신다 라고 했는데, 진리가 우리에게 올때 종교적 열심으로 쌓아 놓은 의가 무너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전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망에서 부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어 비방받는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의 거짓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생명을 우리가 받을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한 삶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의를 위한 삶이라면 다시 무너져야 합니다. 내 안에 거짓이 무너지고 진리가 올바로 서있는지 돌아봐야 하는데, 가족을 어떻게 대하는지 볼때 자신의 삶이 변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비록 변화하지 못하고 세상적 모습이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고 거짓된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19 “기다림 만남 그리고 그 후”(눅2장36-40)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에 대하여 말하였고, 아기는 자라며 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습니다.아셀지파 안나는 북이스라엘에 속하여 율법에 의해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포함되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받게 되는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며, 예수의 기적만 바라보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렁에 빠져서 자기 힘으로 벗어 날수 없는 것을 깨닫고 자격없고 무능한 상태에서 메사아를 기다리며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종교생활이나 모태신앙이 구원의 자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안나는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메시아를 기다렸고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이 받은 깨달음을 모든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 무자격, 무능력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경험한 사람은 타인에 향해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안나와 같이 구원받은 자로서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0(눅2장41-52) “왜 예수님을 모를까” 예수께서 12살이 되었을때 부모와 함께 유월절 관례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돌아올때 아이 예수를 찾지 못하다가 사흘후에 성전에서 만났고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줄을 몰랐느냐고 대답했는데 부모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신비로운 것들을 보고 구원자이심을 알아야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상만 보고 현실에서의 기적만 추구했습니다. 예수의 부모는 율법의 틀안에서 아이 예수를 일반 사람중에서 찾았던 것이며 예수님을 만났을때 하나님의 아들임을 계시하는 말을 들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인데, 사람들은 성경에서 도덕적 기준을 찾아 지켜 내려고 합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본질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무능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을 정하고 그것이 실현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며, 자신이 삶의 우선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현실의 힘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 깊게 묵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치유받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1(눅3장1-6)”회개1-자신이 세속적 존재임을 깨닫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여 요단강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요한은 죄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를 선포했는데 윤리적 잘못을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 자원이나 윤리 실천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다가 결핍과 절망에 빠지고 한계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해결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는 회개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꽃은 화려하지만 본질인 씨를 맺는 단계이고 금방 시들어지는 것처럼 세상의 명예, 재물을 추구하며 가치를 찾으려 하지만 언젠가는 사라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자신의 세상적 업적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며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지만 마지막에 결핍을 발견할때 해결방법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엎드리고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회개입니다.절망 가운데 자신이 본질적인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 구원의 과정입니다. 선한 행실을 계속하며 자신의 성취에 만족하다보면 세속적인 것에 안주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멀어질수 있으므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항상 돌아봐야 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2(눅3장7-14)”회개2-윤리적 실존을 초월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식이라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윤리적 선행이 아니라 회개로부터 나오는 결과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부와 명예가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시대이지만 신앙은 세상적, 윤리적 기준으로 평가할수 없습니다. 회개는 자신이 독사의 자식이라는 실존에 대해 깨닫는 것인데, 세상의 물질과 명예로 자신의 존재를 평가하는 세속적 사람, 윤리적 가치관이나 삶의 결과로 존재를 평가하는 윤리적 사람, 종교적인 삶이나 신실한 신앙생활의 정도로 존재를 평가하는 종교적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율법의 종교적 행위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자녀로 받아주신 것이므로 십자가 앞에 엎드릴수 밖에 없습니다.어떤 삶을 살았든지 윤리적, 세속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절망가운데 절대자 하나님 앞에 설때 우리를 받아주시는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실존이 무엇인지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임을 깨닫고 의의길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3(눅3장15-22)”신약을 낳고 죽은 구약의 막내” 요한은 곧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선포했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강림하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는 음성이 있었고, 요한이 헤롯의 악한 행위를 책망한 것으로 인해 옥에 갇혔습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과 그를 쫒는 경찰 자베르의 관계는 공존할수 없는 존재이고 자베르가 죽어야 장발장이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시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 즉 율법이 예수를 증거함으로 그 기능이 사라지고 예수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의가 옮겨졌고 율법과 은혜는 공존할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께 물로 세례를 행할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었고 자신은 이제 사라지게 될 존재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율법안에 있다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기준이나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율법이라 할수 있는데, 그 율법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유를 얻을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살리시는 구원의 방법을 주셨습니다. 아직 율법에 매달려 있는지 돌아보고 세례요한의 사역을 묵상하며 우리가 그리스도께 인도되어 현실속에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와 자유를 누리는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주일설교 누가-행전24(눅3장16-17) 구원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고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나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불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쭉정이가 불에 태워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자기에게 구원의 근거를 두는 사람은 쭉정이가 될것이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알곡인 것입니다. 즉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고 포기상태에서 진리를 만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에 대한 선택권은 그리스도께 있고 하나님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시어 고통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가 분리되게 하시고 남은 알곡을 구원하십니다. 가인은 자신의 방식으로 제사를 준비했고 하나님께서 당연히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아벨은 자신이 자격이 없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고 죄인임을 깨달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신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신념이나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며, 믿음을 선물로 받으면 자기가 죄인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고 삶의 방식이 바뀌고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겸손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소망이 없고 쭉정이 같은 가난한자,세리,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알곡이고 율법을 잘 지키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이 쭉정이 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슨 목사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고 자신이 죄로 죽은자이며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사랑하고 모든 괴로움과 질병의 원인임을 깨달았고, 구원을 경험한 후 천국의 사냥개가 생명의 길로 인도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알곡이 되기를 소망합니다.